민동이야기

함께 떠나는 철원 역사평화기행

함께 떠나는 철원 역사평화기행 소회

2023년 6월 24일(토)

참석자 : 신대광(역교84), 김진식(종교84), 한민재(신84), 성세완(종교89), 정한철(역교89), 김인규(역교90)

‘신분증을 필히 지참하라’고 할 때 ‘어떤 통제지역 안으로 들어가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철원 두루미센터에서 시작된 민통선 여행은 출발부터 그동안 잊고 지냈던 ‘통제’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민간인 통제지역이니 안내에 따라 정해진 길을 여행하라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앞차만 따라가고 간격도 유지하라는 말에서는 실소를 머금게 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던 통제(?)를 받으며, 철원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가 여행할 ‘제2땅굴’, ‘평화전망대’, ‘월정리 역사’, ‘노동당사’라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큰 상처가 할퀴고 간 역사의 자리를 대한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두가 우리가 어렸을 때 소위 반공교육 재료로 많이 이용되었던 곳들 아닌가?

그렇게 의문어린 여행은 계속되었고, 일정을 따라 현장을 둘러보았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도드라지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는 찾아볼 수 없는 해설을 묵묵히 들었다. 해설사의 설명보다는눈앞에 펼쳐진 사실들에 집중했다. 1975년에 발견된 땅굴, 북한이 손닿을 것처럼 가까이 보이는 평화전망대, 드넓은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도착한 월정리 역사, 민통선을 빠져나와 마주한 노동당사 등.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땅굴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은 유익했다는 생각이다. 더하여 1975년의 상황과 땅굴이 발견되고 강조되었던 시기의 공교로움까지…. 이러저런 생각이 많은 발걸음이었다.

신대광 선생님의 보충설명은 현장을 이동하는 조용한 차 안에서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진행되었다. 내용도 알차고 재미있었지만, 모두 한마음이었을 마음의 답답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듣는 신대광동문의 해설은 어떤 강의실에서 듣는 것보다 더 울림이 컸다고 하겠다.

 

통제(?)를 벗어난 후 홀가분하게 여행한 도피정사와 고석정은 철원역사기행의 여행다움을 만끽하게 했다.

피안에 이르는 절 철원 도피안사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찰(古刹) 도피안사는 ‘피안에 이르는 절’이라는 뜻인데, 피안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 열반의 세계를 말한다. 도피안사는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절인 것이다. 도피안사는 옛 절로서는 드물게 건립연대가 명확하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당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하여 철원에 있는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해 소 등에 싣고 운반하는 중 이불상이 없어졌다. 이에 사방을 찾아 헤매다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서 발견하여 865년(신라 경문왕 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고,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휴전선 북쪽에 위치한 노동당사

1946년 철원군 전역이 소련군정 치하에 들어갔을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였던 철원에 세워진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이다. 건물 자체는 철근 없이, 벽돌과 콘크리트로만 건축하였다.건축양식은 옛 소련의 영향을 받아 소련식이며 철원군 및 인근 지역인 김화군, 평강군, 포천군을 관할하는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물일부가 소실,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철원군 일부 지역(철원읍, 갈말읍 등)이 수복되면서 보존되었다. 전쟁 당시 교전이 심했던 지역이자 북한군이 사수를 목적으로 항전을 하면서 국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 건물 곳곳에 전쟁 당시 생겼던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있다. 앞의 계단에는 전차(戰車) 궤도자국까지 남아 있다.

 

고석정

고석정은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들뜬 마음으로 다음 역사탐방을 주문했다. 분기별로 1회씩 탐방을 잠정 논의하고 오는 10월에 한번더 역사탐방을 하기로 했다. 10월에는 더 많은 동문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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