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나르기 봉사를 하다보면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게 됩니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개는 재개발지역이거나 주거 여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서울특별시에 이런 낙후된 주거환경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사랑의 연탄봉사를 위해 찾은 곳은 ‘성북동’이었습니다. 옛한양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산 바로 아래까지 낡은 집들로 채워져 있고, 골목은 좁고 언덕은 굴곡이 많았습니다. 연탄을 나르기에는 많이 안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라마에서 본 ‘성북동은 부유한 동네’가 아니었던가요?
서울의 동북쪽에 자리잡은 성곽안 마을, 상류층 저택 밀집지역이자 달동네가 공존하는 성북동에서 사랑의 연탄나르기 봉사를 했습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한 이번 행사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난이도 높은 일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서로 더 많이 나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봉사활동에 임해서인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묻어나서 훈훈하게, 화기애애하게 연탄을 나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해준 젊은 피(?)의 활약으로 어려운 코스를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내년에도 봐요^^).
아무리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고 모였더라도 정작 힘든 일 앞에서는 걱정도 되고, 주저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봉사활동에 임한 우리 민동가족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연탄 한 장이라도 더 나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이 보기 좋은 풍경은 같이 봉사활동에 임했던 세월호 가족들도 공감했던 듯합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담당했던 코스도 만만치 않은 난코스였는데, 선뜻 저희 대열에 끼어 연탄을 날라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세월호 가족들이 나르는 곳으로 연탄을 날라주면서 때아닌 연탄나르기 품앗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주제를 놓고 공감하며 토론한 것도 아닌데 연탄나르다 서로를 알뜰히 생각해주는 순간을 맞은 것입니다.
성북동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길상사와 심우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심우장’은 우리가 연탄을 나르는 집을 지나는 곳이어서 잠시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심우장은 독립운동을 한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입니다. 대지의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한옥으로 지은 심우장이 북쪽을 향하여 서 있습니다. 이는 심우장을 지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본총독부를 마주할 수 없어 평생을 돌아앉겠다는 다짐으로 북향집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의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심오한 뜻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까이 일제에 항거하며, 그 생활까지 항일의 뜻으로 채운 분이 한용운 선생이셨네요. 연탄을 나르는 중이었지만 심우장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결기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을버스의 종점 부근에서 시작된 연탄나르기는 이제 마을의 중턱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되었습니다. 이곳은 성벽 바로 아래와 달리 제법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상가들이 즐비하고 잘 꾸며진 단독주택들 사이에 연탄을 사용하는 허름한 집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집은 난이도 상, 연탄을 나르는 거리는 대문밖에서 집안으로 옮기는 것인데, 작업 여건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단독 주택의 2층 옥탑방으로 보이는데, 좁은 계단과 비좁고 낮은 천장의 연탄창고, 환경은 열악했지만, 봉사대원들의 몸사리지 않는 봉사가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허리한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창고 안에서 연탄을 받아 쌓는 일이나, 바닥에 주저 앉아 연탄을 받아주는 것이나, 머리위로 연탄을 날라야 하는 환경이나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았으나 모두 힘을 합쳐 연탄나르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매년 해오던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가 올해 특별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번 연탄봉사를 마치고 나면 그날의 봉사가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매번 새로운 경험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힘든 하루였지만 온몸으로 실천한 이웃 사랑은 연탄 한 장의 따스함과 함께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합니다.
연탄2장도 힘들어서 낑낑 ㅎㅎ
젊음이 좋더라구요 한번에 연탄 4개씩들고 날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