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이야기

오월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오월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공주대와 합동분향
신묘역 입구에서

참석 : 한민재(84), 김진식(종교84), 김경미(영교87), 김정희(유교94) 박승훈(86)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 이 말을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른다정도로 이해했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아주 피상적이고 대상화한 이해이고 표현입니다. 마치 민주주의는 그렇다는 정의를 외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월 광주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말의 무게와 현실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처절했던 피의 역사가 아직도 미완의 혁명으로 남은 자들에게 부채감을 줄 때 그 부담감은 늘 버겁기만 합니다. 이번 광주행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남은 자의 의무를, 더 가야 할 미완의 혁명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월 광주를 잊지 않고 찾는 것을 보면서 부담감 대신 연대와 전진을 생각합니다. 전민동, 서민동, 각 대학마다 민주동문의 깃발을 앞세워 찾는 광주에서 그렇게 우리는 다시 힘을 모아 미완의 혁명을 마무리하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민주의 문에서 만나 같이 참배하게 된 공주대학교 동문 가운데 77학번이라고 소개하신 분은 당시에는 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하시면서,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때문에 매년 망월동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셔도 당시 가열차게 살며 그분의 방식대로 싸우셨을 것입니다. 소위 광주사태라 부르며 불온한 세력의 선동으로 조종된 소요사태라고 규정했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북한 간첩의 선동’, ‘고정간첩 이창용 체포등의 기사가 도배되었습니다. 이같은 기사와 사회분위기는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를 때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아닌 때에도 잘못은 반복되었고, 43년이 지난 오늘에도 광주민중항쟁을 폄하하고 배척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것, 역사는, 진실은 군화발에 짓밟혀도 묻힐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되돌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또 나아가던 중에 덜컹하고 한번 넘어졌더라도 우리는 전진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망월동 묘역에 핀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망월동에서 만난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우리의 미래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올해도 앳된 학생들이 손수 만든 자료집 한 권씩 들고 三三五五 모여 오월 광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나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이나 진지하기 그지없습니다. 당시 어린 학생이었을 고인을 추모하면서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진지하게 그 죽음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 처절하고 억울한 죽음만이 아니라 그 희생이 씨앗이 된 민주주의와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직 우리는 광주를 미완의 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핍박받는 그날의 광주 항쟁을 보면서 이 말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오월의 광주를 방문하면서 언제까지 미완의 혁명이겠는가다짐해봅니다.

 

망월동 묘역 참배 후에는 망월동 구묘역으로 자리를 옮겨 미리 와 있던 전민동 일행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안부를 물으면서 반갑게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동지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구묘역에서 참배 일정을 마친 후에 추모관에 들러 안장된 분들을 둘러보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추모관에서 마지막 날(527일 시청에서 최후의 교전) 희생된 분들이 눈에 띠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치렀던 그분들의 결연함과 출구없는 암담함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추모관에서

참배 후에는 광주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승훈 목사(86)와 만나 그동안 격조했던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날 교회 행사가 있었음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준 박목사님, 고맙습니다.” 맛있는 점심식사와 광주의 명소를 찾아 차담을 나누면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문들과 서로 교류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승훈 목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문이라서 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동지의 만남이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동문들과 함께 오월 광주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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