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 민주 동문 웹진 발간을 환영합니다. 이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신 선후배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학과 92학번으로 입학해서 동아리 ‘민속문화연구회’의 후신인 ‘풍물짓패 ᄒᆞᆫ누리’ 출신입니다. 농촌선교인줄 알고 따라갔던 농활에서, 쫄래에게 영혼을 판 망둥이에게 이끌려 북을 치다 이 세계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현재 주일에는 파주 교하에서 20여 명 정도 출석하는 ‘너머서교회’에서 사역하고, 주중에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로 출근하는 이중직 목사입니다.
제가 입학한 90년대 초반 ‘학생 운동’은 경계와 지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가투에서 만난 노점상 사장님 중에는 노점 셔터를 내리면서 학생들을 탓하기보다 음료를 건네며 격려하는 이도 있었고, 백골단에게 쫓기다 무작정 들어간 집의 주인은 골목이 조용해질 때까지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거리 투쟁 후 온몸을 덮은 최루탄 냄새에 재채기를 하던 지하철 승객들도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군부 독재의 폭압에 맞선 선배들 덕분이었습니다.
총신에서 민주 동문 선배를 만나게 된 것은 제 삶의 근간이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공의와 사랑을 축으로 완성되어져 가는 하나님나라보다는 개인적 구원이 주창되고, 탐구와 합리적 의심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옳고, 교회 지도자의 사상에 반(反)하는 것은 불경하고 불온하다고 여겼던 신앙 환경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과연 제대로 된 길에 선 것인가 두려움과 혼란함 속에서 여러 번 멈추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길은 옳았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416 세월호’ 국민상주에 참여하면서 민주동문회 선배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전해내려온 소문으로만 듣던 선배들, 저희에게 세미나를 해줬던 선배의 선배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동문 한 사람을 알게 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서 길을 만들고 다졌던 선배들이 사회에서 어떻게들 살아가고 계신지, 선배들의 바통을 받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등의 존경과 궁금함, 자기 검열까지 하게 되는 복합적 감정이 일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된 후 우울과 분노, 의문과 막막함에서 조금 벗어난 요즘에, 선후배님들의 노고로 민주동문들의 소식을 듣게 된다니 반가운 마음이 큽니다. 총신 동문 소식지 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