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을 다녀왔습니다.
광주 망월동 묘역에 다녀와서
참석자 : 김성윤, 한민재, 김영운, 류상진, 김경미, 김인규, 박승훈, 서윤숙, 권용희
일시: 2022년 5월 13일
올해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2년전 광주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사건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군부 구테타를 통해 신군부정권을 수립하고 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 선포함으로써 그 전초를 마련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죽음으로 비롯된 혼란한 정국에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며 집권에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오랜 유신독재를 겪은 국민들은 민주화를 열망하며 마침내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미 집권을 가시화하기 시작한 신군부세력은 민주화의 봄을 비상계엄령 확대와 동시에 민주진영 인사 체포, 시위주동자들의 예비검속, 그리고 모든 학교에 내려진 휴교령 등으로 들끓는 민주화의 열기를 찍어 눌렀습니다.
이때 광주에서는 학생들이 전남대학교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시위가 점차 확대되자 계엄군은 학생들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분노하며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고, 학생과 시민이 가세한 시위대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발전하였습니다.
5월 19일 오후에는 장갑차에서 시민을 향해 최초의 발포가 있었습니다. 20일 오후부터는 택시와 버스 기사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참여했고, 시민들도 이에 호응하였습니다.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급기야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하기 시작했고,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시민들도 무장의 필요성을 느껴 인근 경찰서에서 구한 소총과 버스, 군용트럭 등으로 무장하여 계엄군에 맞섰습니다. 계엄군은 광주를 봉쇄하고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무력진압하고 전차를 동원하여 광주시민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미 광주 사진전 등 알려진 정보만으로도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민군도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결사항쟁을 벌였으나 탱크 등으로 중무장한 군부대가 투입되면서 5월 27일 광주민주화운동은 종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의 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광주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화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부정하려는 자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별 뻘짓을 다하고 있으며, 42년이 흐른 세월이 말해주듯이 역사로만 남거나 아예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책임자들은 여전히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5.18조사위원회가 유혈진압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5명 가운데, 이미 전두환, 노태우와 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던 황영시까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이희성은 노환으로 조사가 어렵고, 정호용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당시 진압에 투입되었던 공수여단 3,400여명도 있습니다.
침묵하는 자와 잊혀지기를 바라는 자들이 여전하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의거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이 이루어놓은 민주화의 기틀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오월, 광주! 아픈 이름입니다.
누군가는 숨겨지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잊혀지기를 원할 것이며, 누군가는 역사로만 남기를 바랄 것이지만, 그 아픔을, 그 이름을 기억하고 계승하자고 외치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광주행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망월동을 찾으며, 그 묘역에서 그날의 진실을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4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희생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묘역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살피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준비한 자료들을 들고 참배하는 어린 학생들로부터 대학을 졸업하고도, 바쁜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어린 자녀를 품에 안고 또 걸리며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묘역을 돌며 희생자 한분한분을 기억하고 그날의 아픔을 마음속에 가직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민중항쟁은 이렇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다시 기억되고, 되새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광주행은 그날의 참상을 다시 되뇌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희생이 완전한 민주화에 대한 원동력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같이한 동문들이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렀답니다. 이 푸르고 평화로운 하늘이 마치 참배객들에게 주는 광주영령들의 미소처럼 말입니다.
또 행사 후에는 광주지역에 계신 동문들이 같이 참석해 주시고, 점심식사와 차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뜻 깊은 자리에서 모처럼 동문들의 얼굴도 보고, 반가움과 기쁨은 더욱 컸습니다. 이 자릴 빌어 참석한 동문들과 물심양면으로 찬조해주신 동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