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Ⅰ. 더 낮은 곳을 향하여너머서 교회 사역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건강한 작은 교회’를 위하여!!!

주영관 (신학 92) – 전국지역아동센터 협의회, 너머서 교회

총신대학교 민주동문회 선배님 그리고 후배님 안녕하세요. 

신학과 92학번 주영관입니다. 민속문화연구회의 후신 ‘풍물짓패 한누리’ 출신입니다.

저는 현재 주중에는 문래동의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라는 곳에서 일하고, 주일에는 파주 교하 중앙공원 근처 상가에 예배당을 둔 ‘너머서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사역의 시작 – 마당 넓은 교회

저는 2014년 ‘마당넓은교회’를 개척했었습니다. 

가정교회 시스템으로 유명한 고양시의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썩 개운치 못하게 교회를 나오게 됐었습니다. 그 교회 예배당 과 가까운 곳에서는 개척하면 안 되고 청년들을 데려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어야 해서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개척을 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정했는데 예배만을 위한 건물을 소유(임대)하지 않기, 근원적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곳에 시간과 비용 사용하기, 공동체적 운영을 위해 성도 설교와 재정권, 인사권 독점하지 않기 등이었습니다. 

비전 설명회를 한 후 아름아름 10여 명의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일산 어느 상가에 위치한 작은 콘서트홀을 빌려서 주일 오후에 예배를 하고 철학공유 가족세미나를 하고, 헌금의 10%를 갖고 근처 봉사와 섬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계획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2년간 철학공유 가족세미나를 하면 관계성도 형성되고 제가 계획한 생각들 기독교적 세계관과 민주적 운영방식 등이 충분히 전달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설교, 헌금의 외부 섬김 등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소통의 문제였습니다. 회의를 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후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결론을 뒤집거나 다시 소통하기 위해 불필요한 과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크게 문제로 불거진 건 없었지만 편치 않은 감정들이 누적되던 차에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헌금을 외부로 보내자는 얘기를 할 때마다 ‘목사님 사례도 안 나오는데 좀 더 미루자’는 의견들이 많아서 저와 아내는 교회에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했습니다. 당시 저는 바리스타 자격을 따고 주중에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지역에 녹아들어갈 겸, 교회 예배당으로도 사용할 겸 카페를 오픈하기로 했었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의논하고 결론을 낸 후 인테리어를 마치고 오픈하던 주에 개척멤버였던 사람 몇 명이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2년 여 교회와 카페를 이어가던 중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부목사 사역하던 교회에서 함께 청년 심방을 다녔던 분이었는데, 너머서교회 얘기를 전했습니다. 너머서교회는 저와 개인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SNS를 통해 알고 있었고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목회자가 공석인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청빙 과정과 마당넓은교회 성도들의 동의의 과정을 거쳐 너머서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출발 – 너머서 교회

 

너머서교회는 ‘느헤미야교회협의회(느교협)’라는 교단 소속입니다. 통합측 교회로 출발했다가 독립교단을 거쳐 느교협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느교협은 ‘기독연구원느헤미야’에서 신학을 한 목회자들을 주축으로 5년 전에 교단으로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단과는 무관한 초교파적 연대체 ‘건강한 작은 교회 연합(건작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작연의 핵심 가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교회의 민주적 운영, 투명한 재정 운영, 평신도 중심 운영입니다. 건작연에 소속된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정관을 갖고 있는데 건작연 초창기부터 한국교회 정관 갖기 운동을 해 왔습니다. 소속 교회마다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목회자 아닌 성도가 운영위원장직을 맡습니다. 연 일정 횟수로 평신도 설교를 하고 교단을 초월해서 건작연 내의 교회끼리 강단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너머서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건작연의 가치를 잘 이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올해 14년 차 맞은 중년의 너머서교회는 약간의 고전 상태입니다. 저는 너머서교회의 3대 목사입니다. 1대 목사는 꽤 진보적인 사역들과 관계성을 잘 만들었고 교회도 양적으로 꽤 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황급히 교회를 떠났고, 2대 목사가 오면서 부침을 겪었습니다. 이전에는 일산의 한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었고 이후 일정 기간 떠돌이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2대 목사가 현재 장소를 임대해서 오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교회가 안정이 되긴 했지만 교회 방향성으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 목사와 젊은 성도들이 대거 떠나고 남은 이들에게 제가 오게 됐습니다.

제가 교회 사역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자립적 신앙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목회자의 비상식적인 언행에 맹목적인 순종이 되는 사례들이 있는데 그것은 목회자를 하나님과 성도의 중간자 역할, 제사장 혹은 샤먼으로 여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자립적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성서학적 관점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 상징적인 것이 평신도 설교이고, 저 역시도 선포적 설교보다는 주중에 묵상한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 복음에 근거한 공동체입니다. ‘복음’이라는 표현은 종교적 용어보다는 정치적인 용어에 가까웠습니다. 한 황제가 즉위했을 때 그를 통한 평화 시대가 만들어졌다면 황제의 시대가 시작될 때를 그에 의한 복음의 시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복음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카이사르에 의한 복음, 네로에 의한 복음이 있었듯이 예수에 의한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머리로 둔 교회가 예수에 의한 복음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면 예수 교회 안에서 제국의 복음, 맘몬의 복음을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위해 시도하는 것이 있는데, 최근 일반적인 코스웍의 양육과정 대신 교회 필독도서와 권장도서 목록을 뽑고 있습니다. 도서 목록은 교회 장로님과 기독교세계관학회 멤버인 대학교수, 기독교 출판사 편집장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가급적 기독교 신앙서적이 아닌 과학, 경제, 정치 같은 우리 삶과 맞닿은 영역에서 추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마음 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모임으로 바꾸어가고 싶고, 교회 성도들과 함께 변혁사역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학부 때 학생운동과 신앙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었습니다. 특히 공평과 정의라는 날 선 단어들이 너무 예리하게 삶을 파고 들었고 수용하기에는 너무 무거웠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대와 정권이 바뀔수록 그 단어들의 가치와 있어야 할 자리들을 보게 됩니다. 더디더라도 한걸음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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