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의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는 시구는 격동기를 거치며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또한 그가 풍자시를 통해 보여준 사회 고발과 저항정신은 ‘풍자’라는 형식을 현실비판의 유력한 도구로 인식하게 하였다.
민중미술에서의 풍자
미술을 통해 변혁운동에 함께 하려했던 민중미술 작품들에는 풍자가 잘 표현되어 있다.
풍자가 참여와 현실 비판이라면 ‘해탈‘이란 탈역사 또는 현실에서 벗어남을 내포하는데 근래의 MZ세대가 선호하는 장식적이고 세련된 미술 작품들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민중미술은 독자적 예술 양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잊혀져갔으나 2017년 박근혜를 누드화로 표현한 ‘더러운 잠’에 이어 올해 윤석열 정부 풍자 전시회가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이는 풍자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겠으나 왜 보수진영만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가라는 자기비판을 안고 있다.
오징어게임과 ‘풍자’담론의 한계
정치적 풍자란 권위에 저항한다는 속성 상 권한의 배제, 힘의 열세 등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시민사회 및 시민권력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풍자라는 형식은 현실 적합성을 잃어가고 있다.
세태 풍자를 다루는 영화들의 경우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최근의 흉기난동을 경고라도 하는 듯하고,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을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업주의적 풍자들은 흥행을 위한 요소일 뿐이라는 사실은 오징어게임이 왜 필요 이상의 잔혹한 표현을 사용하였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풍자를 넘어 공동조직으로
권한이 없던 시대에 주효했던 풍자를 대신하는 주동적 방식, 이윤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제3의 길, 인간성 상실이라는 신유형의 사회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양식은 결국 ‘공동체 회복’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생활조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관이다. 가령 유행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공유경제’ 는 외형상 공동체 운동으로 보이나 경제적 이익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세계관의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