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선물하는 작품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선물하는 작품,
Man of Lamancha~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을 배경으로 막이 열립니다.
잔인한 서열이 정해져 있는 감옥 세계에 ‘미겔 드 세르반테스’와 그를 따르는 하인이 입장하고 감옥 세계의 룰 대로 괴롭힘을 당하기 직전, 세르반테스는 자신에게 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심심했던 죄수들이 세르반테스의 요청을 허락함으로, 세르반테스는 하인과 함께감옥에서 즉흥극으로 변론을 펼치게 됩니다. 이렇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시작됩니다.
세르반테스는 세상 인간들의 천인공노한 작태에 의분으로 가득찬 노인, ‘알론조 키하나‘가 되어 즉흥극을 이끌어가며, 죄수들을 공연에 참여시킵니다.
먼저, 세르반테스와 그의 하인이 극 중 인물로 변신하며 부르는 넘버, Man of Lamancha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수염을 붙이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들고, 돈키호테로 변한 알론조 키하나가 되어, 이렇게 외칩니다.
“…바로, 기사가 되어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더 이상 평범한 알론조 키하나가 아니라, 무적의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로!!”
넘버. Man of Lamancha
-이 곡은 돈키호테가 세상을 향해 돌진하며, 충실한 친구인 산초와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무대(감옥)에 널부러져 있는 것들을 조립해서 즉흥극 속에서 캐릭터 변신을 이루는 흥미로운 장면이 그려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제게 잊을 수 없는 곡입니다.
제가 거주하는 양평지역에 고 노회찬 의원이 강의하러 왔을 때, 그 자리에서 그에게 응원가로 불렀던 곡입니다.
그리고 그 해, 7월 23일, 그의 서거 소식을 들었고, 장례식에서 그를 보내며 다시 불러드렸던 곡입니다.)
저는, 감옥이라는 배경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차피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야 할 때,
감옥이 만든 잔인하고 악한 제도에 순응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할 것인가?
좀 더 나은 제도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울 것인가?
맨 오브 라만차는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매번 경험하는 선택의 문제를 자각하게 하는 작품이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돈키호테는 산초와 함께 세상의 악을 멸하기 위한 행보를 계속합니다.
돈키호테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 장면들 -풍차와의 싸움, 허름한 주막집을 성이라 하고, 주막집 주인을 성주님이라 부르고, 그 주막집에서 인생을 포기한 채, 자기 자신을 꿈틀대는 구더기라 여기는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레이디, 순결한 성처녀’라 칭송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모두가 돈키호테를 미치광이 노인네라고 비웃지만, 충직한 친구인 산초는 돈키호테의 편이 되어 그를 지지하고 함께 행동합니다. 이 관계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작품을 연습하면서, 내겐 돈키호테와 산초 같은 관계의 사람이 있나? 내가 그렇게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많이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픈 대사가 있습니다. 이 대사를 진정으로 말하는 조승우 배우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심장 한복판이 춤추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친구여, 난 사는 동안 언제나 생을 직시해왔소. 고통, 불행, 배고픔! 상상도 못할 잔인함. 안에서 잔치가 벌어질 때, 문밖에서는 통곡이 가득하죠. 전쟁터에서 내 동료들은 쓰러져 나가고 아프리카 땅에선 채찍을 맞으며 천천히 죽어가는 것도 보았소. 그들은 내 품 안에 안겨 마지막 순간을 직시했지만 고통 속에, 절망 속에서 죽어갔소. 영광스럽고 찬란한 그런 최후가 아닌… 불안한 눈동자 속에 왜, 왜? 라는 의문을 담고서.
난 그들이 왜 죽는가가 아니라, 왜 살았나를 물었으리라 생각하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과연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짓이겠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입니까? 아뇨,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오! 그 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은 (음악 시작된다) 현실에 안주하고 꿈과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라오!
(노래한다)
나는 나,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정의를 위해 싸운다.
영광의 나팔 소리가 나를 부른다. 죽음이 날 덮쳐와도.”
돈키호테는 남자 뮤지컬 배우라면 모두가 꿈꾸는 배역입니다.
조승우, 정성화, 황정민, 류정한, 홍광호 등, 믿고 본다는 배우들이 돈키호테를 연기 했습니다.
작품이 품은 메시지도 주옥같고, 대사는 빛나고, 음악은 힘 있고 따뜻합니다.
이런 작품에 함께하는 동료들 또한 훌륭하니, 연습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성실함과 탁월함, 좌우의 날개로 날아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행여라도, 공연 소식이 들려오면 꼭 한번 감동의 무대를 직접 경험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돈키호테는 주막집에서 일하며, 노새끌이들에게 몸을 파는 알돈자에게 ‘둘시네아’라고 부르고, 새로운 시각으로 알돈자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대를 구하는 일이오. 그대를 마음에 품고 승리의 영광을 돌리며, 고난 중에 의지하고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나의 목숨을 둘시네아 그대를 위해 바치는 것이라오.”
알돈자가 반박합니다.
“이 세상은 똥구덩이고, 우리는 거기서 꿈틀대는 구데기야! 난 죽으면 지옥가는 건
맡아놨고, 당신, 씨뇨르 돈키호테! 누구랑 싸우던지 깨질껄!
돈키호테 ; 이기고 짐은 중요하지 않소.
알돈자 ; 그럼 뭐가 중요한데?
돈키호테 ;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
알돈자; (침을 뱉고 퇴장하다가 돌아서서)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죠? 주어진…길
이라니?
돈키호테 ;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요!
그리고 가장 유명한 넘버. The Impossible Dream 이 연주됩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돈키호테는 결국,
자신이 그저 늙고 초라한 노인임을 깨닫고 쓰러지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게 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던 돈키호테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은 희망이 생겼던 알돈자가 돈키호테, 아니 이제는 늙은 노인이 되어 누워있는 알론조를 찾아옵니다.
알돈자가 애원하듯 말합니다.
”제발요, 기사님! 제발 기억을 해 내봐요!
모든 일이, 내 인생…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말을 건 후로 달라졌는데… 모든 게!
돈키호테 ;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알돈자 ; 날 바라보면서…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잖아요!
알돈자가 알론조의 기억을 깨우기 위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자신에게 희망을준 노래,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들려줬던 The Impossible Dream 을 알론조에게 들려줍니다.
진심의 호소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던 돈키호테의 꿈과 희망을 다시금 되살아나게 하며 늙고 초라한 노인이라 여기고 누워있던 알론조를 돈키호테로 일으켜 세웁니다.
돈키호테와 산초, 알돈자 셋이 부르는 Man of Lamancha 가 찬란하게 연주됩니다.
이 장면에서 무대 위에 있건, 관객석에 있건, 공연장은 온통 감동의 눈물바다가 되지요.
돈키호테인 알론조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죽음을 맞이하지만, 알돈자의 자신을 향한 고백인 동시에, 세상을 향한 도전을 다짐하는 한마디 대사 (요건 비밀-꼭 공연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로 세르반테스의 즉흥극 변론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어, 다시, 지하감옥.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에 소환됩니다.
황제의 교회를 모독한 죄목으로 종교재판을 치르러 계단을 올라가는 세르반테스를 향해 모든 죄수들이 The Impossible Dream 을 불러주며 그를 응원합니다.
세르반테스는 계단 중간 쯤에서 죄수들의 응원가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힘차게, 정말 힘찬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감옥 문을 나서며 극은 막을 내립니다.
저는, 2008년 늦여름에 지금은 김포로 옮겨 간 LG아트센터에서 임산부 배우가 되어 뱃속 아기와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당시, 돈키호테를 류정한, 정성화 배우가 연기했었는데, The Impossible Dream을 연주할 때마다 무대 옆에 서서, 무대를 향해 배를 내밀고 아기에게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따뜻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어 몹시 행복하네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안팎으로 답답하고 어렵지만, 이러한 지경에서 포기하고 싶고 적당히 비겁해지고 싶을 때, 돈키호테는 제게 말합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입니까? 아뇨, 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오!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과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라오!
뮤지컬 <Man of Lamancha> 의 원작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입니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돈키호테>는 ‘인류의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한 인간의 인생을 가장 사실적이고 진실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400년 동안 전 세계인을 감동시켜온 명작입니다.
이미, 발레, 영화, 오페라, 연극 등 많은 장르로 재구성되었으나, 데일 와써맨에 의해 재구성된 뮤지컬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1965년에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습니다.
뮤지컬<맨 오브 라만차>에서 작가 세르반테스를 화자로 등장시킨 것은, 세르반테스가 살아낸 인생을 연구하고 내려진 결정이라고 합니다.
1547년 9월 29일에 스페인에서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하급 귀족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몰락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정식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독서광 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많은 전투에 참전하였고, 가슴과 왼손에 총상으로 평생 왼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1575년, 군을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중, 해적들에게 붙잡혀 알제리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때의 노예 생활은 <돈키호테> 등,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5년 후, 가족들과 수도회의 도움으로 귀국하여 소설과 희곡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1584년에는 18살 연하의 여인과 결혼하고 힘든 생계를 위해, 식량 조달관, 세금체납원 등의 직업을 갖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였으나, 대중의 관심을 얻지는 못합니다.
세금체납원 일을 하다가, 맡았던 회계일에 차질이 생겨 1597년 여름부터 1598년 4월까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곳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했다고 전해집니다.
세르반테스는 집 앞에서 중상을 당한 기사를 치료해주다가 그가 죽자, 오해를 사게 되어 또 투옥 당하는 불운을 겪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머리말에서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 소설을 응징하기 위하여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릿광대 같고 미친 사람 같은 돈키호테를 창조해 냄으로써,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단면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돈키호테와 그와 상반되는 현실 세계를 추구했던 산초, 이 두 인물이 가진 세계관의 충돌은 유머를 자아내고 풍자적인 표현으로 중세시대를 비판하는 요소로 쓰입니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 둘이 끝까지 지켜내는 신의와 우정의 관계는 세르반테스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돈키호테는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높은, 보다 가치 있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키호티즘’이란 말이 생겨났지요)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돈키호테>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세르반테스의 생각과 메세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저도 하나의 소망을 품어봅니다.
힘든 현실에 묻혀서 꿈을 놓아버리지 않길,
처한 현실이 각박하다고 열정을 낭비시키지 않길,
죽음의 문을 여는 그날에, 그래도 부끄럼 없이 살아왔노라 말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뮤지컬 이야기 <MAN OF LAMANCHA> 를 마칩니다.
긴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명희 (뮤지컬배우)]
빌리 엘리어트, 레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 미스사이공, 마리 앙트와네트 등 다수의 뮤지컬.
백범, 화이트 프로포즈, 천국의 눈물, 마이맘 등 창작 뮤지컬과 연극 공연.
극단 하늘연어 대표.
지난호 ‘빌리엘리어트’에 이어 이번에도 흔쾌히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재미에 치중해서 보았던 공연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다음 번에 라만차 공연을 보게된다면 공연에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질 것 같아요~
알론조의 마지막대사 궁금합니다^^
기회되면 꼭 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