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생사회는 80년대에 이어 아직까지 혁명의 꿈이 운동의 이념이었고 학생운동의 핵심은 노동자 계급운동의 전위이고자 했다. 학생운동에 전념했던 필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배나 구속도 없이 8년만에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목사를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신학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운동 분야로 취업하기로 했다. 민주동문회 선배들의 권유로 제도 정치권 언저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과 관련한 현직 국회의원의 갑작스런 병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홍준호 동문(신학과90)
경실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중앙 시민단체들의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신문사에서 1년을 보냈다. 시민없는 시민운동라는 비판이 들려오기도 했고 다시금 사회변혁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신대 몇몇 동문들과 함께 지역 주민운동의 현장에 들어왔다. 99년에 서울 구로에서 지역 주민운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23년전이다.
▲ 구로에서 지역 주민운동을 하던 시절의 필자. 사진은 구로 어린이 전래놀이 마당 길놀이 사진
동문들을 포함한 ‘주민운동연구소’ 라는 단체를 통해 몇 년간 지역 주민운동을 규모있게 해온 결과 2002년에 기초의원 당선, 4년간 구로구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이라는 진보정당이 성장하고 있던 터라 지역 주민운동의 틀이 지역 진보정당 운동이었다. 2006년에는 서울시의원에 출마했고 전 지역구에 절반에 후보들을 입후보 시켰다. 모두 낙선했지만 진보정당의 풀뿌리 지역운동에 기반했던 힘이었다. 선거이후 지역 주민운동을 꾸준히 실천했고 다시 2010년 출마하여 재선 기초의원이 되었다. 2002년에서 2014년까지는 지역 정치운동을 핵심으로 했고 그것은 진보정당 운동의 지역운동사이기도 했다. 당시 추진했던 ‘학교급식운동’과 ‘지역 생활협동조합운동’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운동이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업무추진비 공개 운동 역시 주민들이 행정을 감시하고 의정에 참여하는 주요한 운동이었다. 2014년 다시 기초의원에 낙선하고 2016년 개인적으로 큰 병고를 치뤘다. 이를 기점으로 지역 현장에서의 운동을 멈추게 되었다.
▲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 삼보일배 중인 필자 (2006년, 주민발의 조례 처리 촉구 중)
2018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 직장을 구하게 됨으로 ‘마을자치’를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서울시 각 자치구에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사업인데 이 사업의 핵심은 ‘마을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 있다. 한국의 기초 자치단체는 너무나 크다. 지방자치 중 단체자치는 존재하지만 주민자치는 불가능한 이유이다. 동단위만 봐도 서울의 동인구는 평균 2만3천명이 넘는다. 2천명만 넘어도 기초자치단체가 될 수 있는 유럽이나 2만명 정도면 자치시로 의회를 구성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주민자치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주민자치회는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 맞춘 독특한 제도이다. 물론 아직까지 주민들에게 주는 권한이 거의 없고 전국적인 실시가 전면화되지는 않았다.
▲ 2022년 성북구 종암동 주민총회 모습
그러나 서울에서는 지난 5년동안 주민자치회를 시범 실시하여 그 역동성을 확인한 바 있다. 추첨으로 뽑는 주민자치위원들이 동네에 필요한 사업을 스스로 계획하여 마을 주민들을 모아 주민총회를 실시한다. 주민들이 마을 일을 토론하고 결정하여 실천을 하고 장기적으로 마을 비전도 수립한다. 사업 자체의 의미도 크겠지만 공론장을 만들어 숙의하는 것 자체가 마을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 2022년 금천구 시흥2동 주민총회 자치계획 투표 결과 사진
필자가 23년전 주민운동을 시작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자신과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운동의 이상으로 삼았다. 주민운동은 외부에서 투신한 운동가가 주민들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를 조정하고 상황을 관리하는 능력이 자치의 힘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426개동에서 주민자치회로 전환한 동은 22개구 263개동이다. 제도의 한계와 현실의 제약은 있겠으나 자치하는 마을을 지향함에 있어 주민자치회의 추진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