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의 백수일기
김해규 (역사교육과 82)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31년 동안의 교직을 내려놓고 이제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코로나까지 닥쳐 좀 불편하지만 여유를 부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89년 평택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사립학교여서 어디로 전근 갈 일도 없었다. 교직생활은 즐거웠다. 전교조 활동으로 20여 년쯤 핍박 받기는 했지만 도둑질이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도 아니고 의로운 일로 당하는 고통은 오히려 자부심만 키웠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역사연구를 시작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선생을 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봉사하고 싶은데 가장 만만한 것이 ‘역사’였기 때문이다. 머리는 똘똘하지 않았지만 우직함이 있어 묵묵히 한길로 직진할 수 있었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지역사(地域史)’의 쓸모가 많아졌다. 시민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공부가 부족해서 대학원에도 진학했고 관련 서적을 구해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1999년부터는 평택지역사 관련 편찬사업의 책임도 맡았으며, 신문연재와 강연, 마을조사와 사료조사, 구술조사도 시작했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에는 적극 동참했다. 그렇게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역활동을 하며 30여 년을 보냈다.
퇴직할 때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아침 일찍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신문연재를 했고, 비대면 강연하고, 책도 쓰고, 구술조사사업을 전개했다. 평택을 넘어 경기남부의 다른 지역에서도 강의했고 평택뿐 아니라 안성지역 연구모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오성면 ‘공간미학’에서 개최된 역사토크콘서트
2023년으로 넘어오면서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었다. 지역 내 자치단체와 사회단체들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올해 최우선 목표는 10년 동안 묵혀뒀던 박사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지난해 목차를 제출하고 중간발표까지 했으며, 축적된 사료와 연구성과가 있었기에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열심을 내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했다. 지난 해 11월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감염 기간에는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후유증이 대단했다. 후유증에서 조금 벗어났더니 12월 말이 되었고, 2월 말까지는 ‘평택의 사라지는 마을 조사보고서’ 작성에 열중했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3월부터는 4월 초까지는 탈진상태로 허송했다.
4월이 되자 코로나가 완연하게 걷혔다. 평택시청과 평택문화원을 비롯해서 공공기관에서는 각종 사업 아이템을 내놓으며 함께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평택시립도서관과 평택시 평생학습센터에서도 각종 콘텐츠를 계발하여 맡아달라고 하였다. 안성지역에서도 마을 구술조사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이렇게 가다가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아서 거절도 하고 사양하기도 했지만 평소의 인간관계와 친분을 빌미로 밀고 들어오는 것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박사 논문은 뒷전이 되었고 우선 주어진 과제 수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평택시 팽성읍 객사 역사토크콘서트
지난 4월에서 7월 초까지는 평생학습센터의 강좌 2개를 내가 소장으로 있는 평택인문연구소가 수주받아 수행했다. 평택시립 안중도서관 강좌도 책임졌다. 그 와중에 ‘마을지’ 편찬사업도 우리 연구소 사업으로 진행했고, 안성시의 마을조사와 평택기록관의 행정구술조사사업, 인문연구소 학술세미나도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평택지역 마을조사사업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상반기 사업들 가운데 가장 의미 있었던 사업은 평택시 평생학습센터의 ‘찾아가는 역사 토크콘서트–우리마을 블루스’ 사업이었다. 기획과 섭외, 홍보, 강연, 행정 등 전 분야를 나 혼자 진행했지만, 평택시의 문화적 소외지역으로 가서 ‘작은 음악회’와 ‘역사토크’를 개최하면서 오히려 나 스스로 감동받았다.
하반기에도 각종 강연과 조사연구사업, 출판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건강이 허락되어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그래도 자신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감사하고 기도한다.
평택시 진위향교 역사토크콘서트